#쓰리빌보드 #환상의빛 #맨체스터바이더씨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평소 특정 주제와 연상되는 영화가 꼬리를 물듯 떠오를 때 마다 구글 독스에 기록해두곤 합니다. 그리고 적절하다 싶을 때, 뉴스레터로 묶어둔 영화 꾸러미를 님께 보내는 거죠. 시기의 적절함은 그 주의 날씨, 사회적 이슈, 때때로 개인적인 기분에 따라 결정되곤 합니다.
이번 주는 오래 묵혀둔 주제를 보내려 합니다. 그 주제는 "상실". 어느날 갑자기, 가족을 잃어버린 채 남겨진 이들. 그들은 대답없는 질문을 끊임 없이 반복하고 그들의 시간은 그때에 멈추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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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2017)
영화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이게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는 빌보드는 BTS가 1위를 석권했던 빌보드 차트뿐이었거든요. 검색 후 빌보드가 광고판을 뜻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볼 수 있는 아주 커다란 광고판 말이죠. 영화가 시작되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비바람에 낡고 녹슨 세 개의 빌보드, 그러니까 광고판이 등장합니다. 영화 포스터에서도 보이네요.
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밀드레드 헤이스(프란시스 맥도먼드).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광고판 세 개를 보고 그녀는 광고판을 관리하는 회사를 찾아가죠. 그리고 세 줄의 광고를 내기로 합니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찾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조용했던 마을이 발칵 뒤집힙니다.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는 성실함과 곧은 인품으로 마을에서 존경받는 경찰관이거든요. 평소 윌러비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노발대발하고 마을 사람들의 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밀드레드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시간은 딸이 죽었던 그날에 멈추어 있거든요.
감독 : 마틴 맥도나
러닝타임: 1시간 55분
Watch on 디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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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학창 시절 할머니를 잃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 할머니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고 그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종종 있던 일이라 할머니를 금방 찾을 수 있겠거니 가족들은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그날 이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지요. 유미코는 어른이 된 후에도 할머니가 행방불명된 날의 꿈을 꾸곤 합니다.
한편, 유미코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와 결혼해 소박한 살림을 꾸려갑니다. 불현듯, 그 일이 일어나 그녀가 두 번째 상실을 겪고, 그녀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전까지는요.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단편이 영화의 원작입니다. 원작 소설은 유미코가 이쿠오에서 쓰는 서간문의 형식이에요. 유미코가 이쿠오에게 대화를 건네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들어줄 이쿠오는 세상에 없어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처연하고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소설의 정서를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러닝타임 : 1시간 49분
Stream on 왓챠,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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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영화 제목을 보고 영국 영화인가, 그런데 맨체스터에 바다가 있었던가 했는데, 제목의 맨체스터는 영국에 있는 도시 맨체스터가 아닙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 "맨체스터-바이-더-씨"를 의미하죠.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는 도시 "맨체스터"와 구분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보이는 바다가 아마도 "맨체스터-바이-더-씨"에 맞닿아 있는 바다인 것 같아요. 잔잔한 바다에 작은 배 한 척이 항해를 하고 배에는 아빠와 아들, 삼촌으로 보이는 세 남자가 있습니다. 아빠는 배를 몰고, 삼촌과 조카는 유쾌한 농담과 장난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지요.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나 했는데, 곧장 장면이 바뀌어 영화는 눈 덮인 겨울날 아파트 잡역부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의 일상을 비춥니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아파트는 아무래도 "맨체스터-바이-더-씨"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떤 사연으로 리는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아파트 잡역부로 일하게 된 걸까요. 장난기 넘치던 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무신경한 얼굴로 주민들의 불평불만을 들어 넘기는 남자만 남겨진 걸까요.
감독 : 케네스 로너건
러닝타임 : 2시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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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멀리 사라져 버린
- 루 버니
날씨가 더워지면 추리소설을 찾아 읽곤 합니다.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사건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러다 보면 더위도 한결 가시는 것 같거든요. 정신없이 추리소설을 골라 읽다가 루 버니의 소설을 읽고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지역 축제에서 사라져 버린 언니를 추적하는 줄리애나와, 같은 공간에서 몇 주 전 있었던 강도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와이엇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대체 그때 언니는 왜 사라진 걸까요. 그날 강도는 왜 하필 와이엇을 살려두었을까요.
추리소설의 그 어떤 문법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코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던지는 끝없는 물음. 결코 그 답을 알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멈출 수 없는 그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느라 물음이 생긴 그 시각에 박제되어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 모두의 시간이 다시금 천천히 흘러갈 수 있기를.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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