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어린이날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어쩌면 어제부터 주말까지 연휴를 즐기는 중이실지도 모르겠네요. 햇살도 밝고 날도 좋아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거실 창 밖으로 보며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잔디밭을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저만치 달려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보이후드 (2014)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 이야기를 9년 간격으로 세 편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담아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다음으로 선보인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 『보이후드』였습니다. 영화가 개봉 당시 더욱 화제가 되었던 건 정말로 "소년"의 "성장"을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 역을 맡은 배우 엘라 콜트레인과 같은 속도로 흐릅니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매년 15분 분량의 영화를 거의 실제 시간과 맞추어 촬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지요. 6살 꼬맹이 메이슨이 학교에 가고 사춘기를 겪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2014년 영화가 왜 이렇게 화질이 흐리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지금은 무척 유명해졌지만 그때는 인디밴드였던 콜드플레이의 노래 『Yellow』도 나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질도 점점 또렷해지고요, 매해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 아이폰과 페이스북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았던 모습을 소소하게 그리는데요, 저도 그 시간을 함께 보냈던 지라 마치 주인공과 함께 자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러닝타임 : 2시간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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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2012)
긴 제목이죠? 한국어로 번역하면 "소나무 너머" 정도가 될까요? 영문 제목을 한국어 음가로 표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했는데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 스키넥터디(Schenectady)를 "The place beyond the pine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나 봐요. 도시를 지칭하는 뜻 이외에도 문자 그대로 "소나무 너머"는 영화에서 온갖 사건과 비밀과 사연들이 묻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크게 세 줄기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모터사이클 스턴트맨 루크(라이언 고슬링)와 신참 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의 만남, 15년 후 학교 친구로 만난 루크의 아들 제이슨(데인 드한)과 에이버리의 아들 A.J.(에모리 코헨),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루크의 아들과 어울리는 것이 마냥 불편한 에이버리와 제이슨의 대면. 그동안 누군가는 아들에서 아버지로 입장이 바뀌고, 누군가는 영원히 아버지로 머물고, 누군가는 아버지를 갈구하거나 맞서는 아들로 성장합니다.
영화 포스터에는 브래들리 쿠퍼와 라이언 고슬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저는 데인 드한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처럼 느껴졌어요. 자전거를 타고 소나무 숲 속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제이슨의 뒷모습이 자전거를 볼 때마다 종종 생각납니다.
감독 : 데릭 시엔프랜스
러닝타임 : 2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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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 (2012)
소개하고 보니 이번 주 영화는 모두 번역 없이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고 있네요. 머드는 진흙을 뜻하기도 하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머드(매튜 맥커너히)의 본명이 정말로 머드인지, 습지가 많은 동네에서 자라 그런 별명을 얻게 된 건지, 그도 아니면 그의 삶이 진흙처럼 얼룩져 그리 불리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알칸소 주는 미시시피 강 하류 지역으로 평야와 습지가 많습니다. 14살 소년 엘리스(타이 셰리던)와 넥본(제이콥 로플랜드)에게 강에서 보트를 타는 일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 같아 보여요. 그들은 보트를 타고 습지와 무인도를 누비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어느 날 한 무인도에서 나무 위에 걸려있는 보트를 발견합니다. 아지트로 딱이겠다 싶어 들뜨는 것도 잠시, 슬쩍 보아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남자 '머드'가 보트에서 나타나 그들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 엘리스에게 사랑을 구하기 위해 도피 중이라는 머드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매혹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날마다 싸우기만 하는 부모님의 이미 끝나버린 사랑보다 끝까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머드의 사랑이 무척이나 숭고해 보였을 거예요. 정말 머드의 사랑은 엘리스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그런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불릴 수 있는 걸까요?
감독 : 제프 니콜스
러닝타임 : 2시간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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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이야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세 편에 걸쳐 소년의 이야기를 보았으니 이번에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영화 『머드』에서 그린 미국 남부와 강, 습지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이 소설을 읽기를 권합니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가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책 첫 장의 지도도 좋은 길잡이가 되지만 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드』에서 보았던 강과 수풀을 떠올렸어요.
1969년과 1952년을 오가며 습지에 홀로 버려진 어린 소녀 카야의 성장담을 담았습니다. 소설의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동물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오랜 기간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한 동물행동학자입니다. 그는 칠십이 넘어 처음으로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썼는데요 그녀의 전공 덕분에 습지의 생태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진지하게 다룹니다.
이 정도로 흡인력 있는 소설이 왜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했는데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을 맡아 영화로 만들어졌네요. 미국에서 올 7월 개봉이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곧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큼성큼 저만치 걸어가는 소년들의 뒷모습에서 저는 스스로의 뒷모습을 찾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는 성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