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두 번째 영화 음악 작곡가 특집의 주인공은 방준석 음악 감독입니다. 이승열과 함께 "유앤미블루"라는 록 밴드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영화 음악으로 분야를 옮겨서 정말 많은 작품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그는 지금 우리와 다른 곳에 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영화 속에서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님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방준석 음악 감독의 흔적이 담긴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후 아 유 (2002)
최근 2년, "메타버스"라는 말이 화제였지요.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떼고 막상 개념을 살펴보면 딱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데 정말 많은 곳에서 다채롭게 사용되었습니다.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된 냥 말이에요. 이런 현상이 의아하기도 하고 단어 자체가 너무 남용되어서 벌써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후 아 유』는 "메타버스"라는 말이 지금처럼 사용되기도 훌쩍 전인 2002년에 개봉하였습니다. 주인공 형태(조승우)는 게임 개발자로 63 빌딩 30층에서 "후 아 유"라는 채팅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후 아 유"는 단순 채팅 기능 이외에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고 나아가 자기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모임을 개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딱 "메타버스"에 부합하는 게임 아닌가요?
한편, 인주(이나영)는 63 빌딩 수족관에서 다이버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챙기고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인어 꼬리를 달고 수족관 안을 누비는 퍼포먼스도 마다하지 않죠. 그러다 우연히, "후 아 유"의 베타테스터로 활동을 시작하고 게임 홍보용 인터뷰 영상을 수집 중인 형태와 만나게 됩니다.
2002년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런 비슷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판교 테크노밸리가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상당히 예스러운 그래픽 디자인과 컴퓨터 장치도 눈에 띕니다. 조승우 배우와 이나영 배우의 풋풋한 시절도요.
감독 : 최호
러닝타임 : 1시간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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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2006)
방준석 감독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여러 번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가장 최근작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자산어보 (2021)』, 『변산 (2018)』, 『박열 (2017)』, 『사도 (2015)』, 그리고 『라디오 스타 (2006)』까지 모두 다섯 편을 함께했네요.
가수 최곤(박중훈)과 그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이입니다. 최곤은 노래 "비와 당신"이 크게 히트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저 왕년에 잘 나갔던 가수일 뿐이죠. 민수는 그런 최곤에게 어떻게든 무대를 만들어주고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바쁩니다.
그날도 최곤은 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다 손님과 시비가 붙어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죠. 그를 빼내기 위해 합의금을 구하러 백방으로 돌아다니던 민수는 지인인 방송국장으로부터 영월의 라디오 DJ 일을 최곤이 수락하면 합의금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는 가수 최곤과 그를 어떻게든 구슬려서 영월 방송국의 라디오 DJ로 데려가려는 민수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영화에서 최곤의 히트곡으로 나오는 "비와 당신"은 방준석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에서는 박중훈 배우가 직접 불렀고 특별 출연한 노브레인이 락 버전으로 부르기도 했어요. 멜로디 라인이 중독성이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비와 당신"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감독 : 이준익
러닝타임 : 1시간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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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2020)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영화는 영화 『모가디슈』입니다. 방준석 음악 감독의 기다란 필모그래피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영화이지요. 2020년에 개봉을 계획했다가 한 차례 미루어져서 작년 여름에서 개봉했습니다.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얼어붙지만 않았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수도입니다. 소말리아는 동쪽으로 인도양을 끼고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나라인데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오랜 내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들은 소말리아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했습니다.
1991년의 소말리아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여했고 우리나라 대사관도 수도 모가디슈에 있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한, 미국, 이탈리아, 이집트 등 여러 나라가 소말리아에 대사관을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때 당시 아직 UN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소말리아의 지지가 UN 가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외교전을 벌이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납니다.
『군함도』로 이런저런 쓴소리를 들었던 류승완 감독이 그때의 부진을 씻어냈다는 평이 많네요. 저도 손에 땀을 쥐며 대사관 사람들의 탈출을 지켜보았습니다. 방준석 음악 감독이 작곡한 아프리카 풍의 음악과 자동차 추격전에 깔렸던 긴박한 리듬의 음악에 지금도 귓가가 멍멍합니다.
감독 : 류승완
러닝타임 : 2시간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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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이야기
영화 남과 여 OST
방준석 음악감독의 작업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숙연해지는 마음이 듭니다. 1999년 『텔 미 썸띵』을 시작으로 마지막 작품 『모가디슈』까지 거의 매해 빠지지 않고, 어떤 해는 여러 개의 작품을 발표했어요. 어떻게 이 정도로 성실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평소 방준석 음악 감독의 OST 앨범을 즐겨 듣는데요, 저는 영화 『남과 여』의 OST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얗게 쌓인 눈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잡아먹어버릴 것 같은 핀란드를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보다 OST가 더 기억에 남아서 영화는 한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OST는 자주 듣곤 해요. 밤에 조명을 낮추고 가만히 첼로와 클라리넷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사박사박, 눈 위를 걷는 기분이 듭니다.
4월도 어느 덧 끝자락이네요. 시인 T. S. 엘리엇은 백 년 전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백 년의 시간이 우리 모두의 잔인함을 무디게 만들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