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군산 #한여름의 판타지아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이 더위가 언제 끝나나 싶다가도 막상 바람의 온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면 마음 어딘가가 알싸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동안 어떤 문장이든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여 감성 문구를 만들어보는 놀이가 유행이었지요.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의 정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기대어 서서 지난여름을 되돌아봅니다. 나무의 녹음이 짙어지듯 나도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요. 님도 한 계절을 무사히 살아낸 스스로를 칭찬하고 다독여주세요. 최악의 하루 (2016)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일본인 료헤이(이와세 료 분)는 종이쪽지 하나에 의지해 서촌에서 약속 장소인 "류가헌"을 찾고 있습니다. 골목길을 헤매길 한참, 우연히 은희(한예리 분)에게 길을 물어요.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며 둘은 류가헌을 찾아갑니다. 은희도 이 동네를 그리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녀의 친절한 미소를 믿어보기로 합니다. 주선자의 착각으로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린 료헤이. 은희는 그런 그를 위해 근처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료헤이는 소설가, 은희는 배우이지만 둘 모두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점에 묘한 공감이 싹트는데요, 다른 약속이 있어 남산으로 향하는 은희와 본래 약속 장소로 돌아가는 류헤이에게 앞으로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님이 지을 표정도요. "제발, 그만. 제발 좀 가라고!"를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김종관 감독은 지금 서울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스크린에 옮기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남산에 가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남산 케이블카에 탑승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 감독 : 김종관 러닝타임 : 1시간 33분 Stream on Watcha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2018) "흰 털은 푸른 물에 뜨고 붉은 발바닥 맑은 물결을 헤친다" 제가 이 영화를 본 데는 "군산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굉장히 좋았다."는 지인의 감상이 2할, 문소리 배우가 8할 정도의 지분을 차지합니다. 장률 감독의 다른 영화 "경주"가 알쏭달쏭했거든요. 보다가 재미없으면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홀딱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전직 시인 현직 백수 윤영(박해일 분)과 윤영의 선배와 결혼을 했다 얼마 전 싱글로 돌아온 누나 송현(문소리 분)이 충동적으로 떠난 군산 여행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버스표를 끊어 군산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듭니다. 두 배우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진행되는 탓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공백을 문소리 배우와 박해일 배우가 가득 채웁니다. 카메오로 등장한 배우들도 이야기에 재미를 더합니다. 영화는 독특하게도 타이틀 롤이 영화 진행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한참 동안 이야기가 더 진행되어서 생경했어요. 아름다운 군산의 풍경과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를 두고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감독 : 장률 러닝타임 : 2시간 1분 Stream on Watcha 한여름의 판타지아 (2014) "아무것도 없어서 좋아요." 흑백으로 어느 오래된 식당 안을 제법 오랫동안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한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1부 "첫사랑 요시코"를 시작합니다. 새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작은 지방 도시인 고조 시에 온 영화감독 태훈(임형국 분)과 조감독 미정(김새벽 분), 그들을 안내하는 공무원 다케다(이와세 료 분)의 이야기가 이어지지요. 다큐인 듯 다큐 아닌 진행에 조금 아리송해질 때쯤 2부 "벚꽃 우물"이 스크린을 색으로 물들이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1부에 등장했던 미정과 다케다가 혜정과 유스케로 새롭게 등장합니다. 1부는 영화를 구상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2부는 그렇게 감독이 구상한 이야기를 정말 영화로 만든 거였어요. 저는 1부는 반쯤 꾸벅꾸벅 졸며 보고 2부는 눈을 반짝이며 보았습니다. 같은 배우인데도 아무래도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서 자꾸만 얼굴을 확인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2부 "벚꽃 우물"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네요. 어색한 남녀의 드문 드문 한 침묵과 여행지에서 싹튼 사랑, 여름을 마무리하는 불꽃놀이가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제목과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 장건재 러닝타임 : 1시간 37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시집 (2018) 시집을 읽으면 시를 한편 씩 읽을 때와는 다른 감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싱글과 정규 앨범의 차이 정도일까요. 시 한편만 떼놓고 볼 때는 모호했던 정서를 시집 한권을 통으로 읽으면서 좀 더 선명히 그려볼 수 있었어요.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각 부에 사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대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부 '눈빛도 제법 멀리두고'에 실린 시 '처서'의 마지막 연을 읽어봅니다. 마루로 나와 앉은 당신과 나는 희고 붉고 검고 하던 그 옷들의 색을 눈에 넣으며 여름의 끝을 보냈다 - 박준, 처서 중 의도한 건 아닌데 쓰고 보니 세 영화 모두 일본과 닿아있네요. 배우가 겹치기도 하고요. "한여름의 판타지아-이와세 료-최악의 하루-한예리-군산:거위를 노래하다"로 이어지는 늦여름 기차에 올라타 느긋하게 이 여름을 배웅해 봅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