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큼털털 사워도우 먹으랴느냐, 어화둥둥 내사랑아
사워도우와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사워도우 가득 담긴 클램차우더를 반사적으로 떠올린다. 출장지로 샌프란시스코가 결정되었을 때도 그랬다. 머무는 동안 시간을 내서 꼭 클램차우더와 사워도우를 먹어야겠다고 숙소를 예약하자마자 가장 가까운 매장부터 찾았다. 역사가 오래되고 워낙 유명한 빵집이라 주요 관광지가 아닌 시내에도 여러 곳 분점이 있었다.
사워도우(Sourdough)는 말 그대로 신맛이 나는 빵이다. 이스트를 쓰지 않고 물과 밀가루만으로 만든다. 물과 밀가루를 섞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스타터(starter)라는 반죽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밀가루를 배합해 빵을 만든다. 스타터는 종갓집 씨간장처럼 대를 물려가며 사용하기도 한다고. 실제로 처음 사워도우를 구울 때 다른 사람의 스타터를 조금 얻어다가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빵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젖산이 생성되어 사워도우 특유의 시큼한 맛이 형성되는데 이 맛이 묘하게 바다 향과 닮아 있어 조개 수프의 일종인 클램차우더와 찰떡궁합으로 잘 어울린다. 한 번은 숟가락으로 클램차우더를 떠먹고 이어서 사워도우를 죽죽 찢어 클램차우더에 푹 찍어 먹으면 바다를 한 입 가득 먹은 기분이 든다.
처음 이 음식을 먹었을 때는 열일곱살 천둥벌거숭이였고 그냥 신 빵에 조개수프구나 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흘려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문득 문득 그 맛이 떠올랐다. 언젠가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된다면 꼭 먹어야지 했다가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싶어 실눈을 가늘게 떴다 감았다할 뿐이었다. 거의 십년이 지나 환승으로 짧게 샌프란시스코에 들리게 되었을 때, 기회를 놓칠새라 사워도우와 클램차우더를 먹었는데 기억 속의 맛과 실제 음식의 맛이 놀랍도록 일치했다. 이제 되었다 하는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다시 이따금 시큼털털한 빵과 짭쪼롬한 클램차우더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서른 자락에 다시 찾은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와 그만큼 푸른 하늘의 샌프란시스코를 기대했으나 실제로 나를 맞은 건 런던 못지않게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과 장대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쌀쌀한 겨울바람으로 무장한 도시였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비가 잦아서 이런저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호텔 로비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체크인을 접수하던 직원도 이번 겨울은 이상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린다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지칠대로 지친데다 예상보다 서늘한 날씨에 몸이 잔뜩 웅크려졌다. 뭔가 따뜻한 게 필요해.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호텔에 짐을 대강 풀고는 곧장 미리 점찍어둔 가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 사이. 애매한 시각의 매장에는 손님 몇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주문한 사워도우와 클램차우더. 입안 가득 퍼지는 시큼함과 짭짤함에 뭉쳐있던 근육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가끔 오래된 식당을 찾으면 맛이 기억과 달라서 실망할 때가 있는데 이곳은 어쩜 이렇게 매번 같은 맛을 유지하는지, 이정도면 온갖 브랜드가 들어와 있는 서울에 분점을 낼 법도 한데 왜 아직도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먹을 수 있는지 물음표를 잠깐 떠올리다 시고 짠 맛의 향연에 금새 의문을 지워버리고는 금새 한 그릇, 하니 한 빵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어쩌다 보니 10대와 20대, 30대에 한 번씩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40대의 나는 다시금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 먹는 사워도우와 클램차우더도 여전히 그대로일지 벌써부터 조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