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여성. 왠지 "우리 찬실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찬실 씨(강말금)는 적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영화 프로듀서로 평생 지 감독과 영화를 만들며 살거라 생각했건만, 갑자기 지 감독이 사망하면서 그녀의 역할도 사라지고 만 것이죠.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도 없고. 완전 망했습니다. 하지만 찬실이는 꿋꿋합니다. 용달차도 부르지 못해 고무 대야에 짐을 담아 산동네로 이사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친하게 지내던 배우 소피(윤승아)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도 어딘지 그녀에게서는 긍정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옵니다. 밝고, 맑아요. 전부인 줄 알았던 영화 일을 그만두고 나니 그동안 없었던 복이 한꺼번에 굴러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천연덕스러움에 얼마나 깔깔거리며 웃었는지 몰라요. 장국영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흰 속옷 차림으로 등장해 찬실이에게 말을 건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한다는 심남의 말에 소스라치고, 찬실이가 담당했던 지 감독의 영화가 사실 싫었다는 아버지의 내레이션이 담담하게 흐릅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납득시키는 데 강말금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집주인 할머니로 등장한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도 봄날 햇살처럼 따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