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금요예찬 쓰는 큐레이터Q입니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을 봅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지난 오늘, 블로그에 남겨둔 추억을 돌라보세요"라며 같은 날짜에 썼던 글을 띄워주는 기능이 있거든요. 덕분에 12년 전 어제 비가 내렸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그날 가을 비는 봄비처럼 포근했다는데 이번 가을 비는 추위를 몰고 오려나 봅니다.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요.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탕웨이와 만추, 그리고 귀걸이 백화점에서 액세서리 코너를 구경하다 귀걸이 한 쌍을 발견했다. 소라와 조개, 진주 모양으로 장식된 귀걸이는 얼핏 보면 장난감 같지만 다시 보면 세부 묘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프랑스에서 수공예사가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었다는 그 귀걸이는 특이한 모양만큼이나
가격도 특별했다.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비싸지는 않지만 그 돈을 들여서 사는 게 과연 맞을까 하며
멈칫하게 되는 어정쩡한 액수. 잠시 고민하다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 “둘러보고 올게요”를 내밀고 코너를 빠져나왔다. 동행했던 친구가 백화점 할인 카드가 있다며 말했다. “사지 그래? 예쁘던데.”
“예쁘긴 한데, 그 돈
주고 사긴 좀 그래. 금도 아닌데…”
“하긴… 그렇기는 해.” 아무래도 이건 사지 못하겠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때도 마음을 조금 더 쓰면 샀을 수도 있을, 애매하게 높은 가격을 넘지 못하고 결국 사지 못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를 보고 나서였으니 십 년도 전에 일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학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가볍다는 핑계도 사라진 마당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어쩜 이리도 한결같을까. 영화는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엄마의 부음으로 교도소에서 고향 시애틀로 외출하는 애나(탕웨이 분)를 좇는다. 애나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애틀 거리를 돌아다니다 한 빈티지 가게에 들어가 원피스와 외투, 귀걸이
한 쌍을 산다. 오랫동안 착용하지 않아 막혀버린 귀의 구멍을 귀걸이로 억지로 뚫는데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그 귀걸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터키색 비즈가 알알이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였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떠올릴 때 드는 애잔한 마음. 이 마음이 어쩌면 『만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집요하게 인터넷을 뒤졌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소품은 그걸 홍보 요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욕망과 집념의 검색 후에도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없었던 걸 보면 아마 미술팀이 제작하거나 현지 빈티지 숍 등에서 공수한 물건이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마음에 묻어두고 지내길 며칠. 우연히
백화점 액세서리 코너에서 영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귀걸이를 발견했다. 이건 운명이야! 사야 해! 마음 속은 브라질 삼바 축제 퍼레이드처럼 날뛰었지만 겉으로는
짐짓 점잖을 떨며 가격을 물었다. 생각보다 높았다. 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라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애매한 가격. 그래서 그때도 나는 “둘러보고 올게요” 카드를 쓰고 백화점을 나섰다. 엉뚱한 접근이었지만 덕분에 『만추』는 개인적으로 더욱 애틋한 영화로 남았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떠올릴 때 드는 애잔한 마음. 이 마음이 어쩌면 『만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애나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마주한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애나는 홀로 탁자에 앉아 비로소 웃는다. 『만추』는 제목과는 반대되게 꽃이 아직 피기도 전인 이른 봄에 개봉했다. 기묘하게
어긋났던 개봉일 덕분에 나는 『만추』를 봄이 오면 한번, 늦은 가을이면 한번,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떠올린다. 다음 봄이 오면 나도 애나처럼
미소 지을 수 있을까.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