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금요예찬 쓰는 큐레이터Q입니다. 2주 연속 월요일이 휴일이라 얼떨결에 주4일 근무제를 체험했는데 참 좋은 것 같아요. 얼마전 아이슬란드에서 주4일 근무제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는데 부디 널리 보편적으로 알려지길 학수고대 합니다. 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겠죠? 염원을 담아 변변찮은 저의 글을 띄워 보냅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여기, 디스토피아 “좀 괜찮아지면 보자.”라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WHO가 팬데믹을 선포했다. 그때 말했던 “좀 괜찮아지면”이
이렇게 기약 없이 길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혹시라도 모를 바이러스 노출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연일 반복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불필요한 외출이란 생존활동에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족과 외식을 하고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포함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로 눈을 돌렸다. 요원하게만 보였던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이 허탈할 정도로 빠르게 현실이 되고 온라인 쇼핑 시장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가상현실과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른바 “메타버스”가 멀지 않았다며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 미디어가 늘어났다. 해당 키워드는
벌써 너무 많이 반복되어 조금 식상할 지경이다. 일상을 한없이 유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온라인 서비스는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았다.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은 혼란한 가운데에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팬데믹 이전에는 줌(ZOOM)이라는 기업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온라인 행사가 줌을 통해 이루어진다. 온라인 유료 구독을 시작하는 사람 수도 늘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가기 어려워지니 비슷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사람들이 몰렸고 이제는 주변에서 이런 서비스 하나쯤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일상을 한없이 유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온라인 서비스는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았다. 거대 기업의 온라인 플랫폼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리다가도 순간 멈칫하고 마는 때가 있는데,
수 십 년 전 여러 디스토피아 영화와 소설에서 그렸던 미래가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줄줄이 띄워주는 걸 보며 알고리즘이 어쩜 이리 똑똑하게 내
생각을 읽는지 기특하다가도 그 알고리즘이 내 생각을 읽을 때까지 거쳤을 과정을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 마냥 꺼림칙하다. 귀여운 캐릭터와 편리한 UX 디자인에 현혹되고 깨알 같은 글씨를
읽을 길이 없어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동의를 눌렀을 수많은 “개인 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가 유령처럼 배회한다. 빅 브라더는 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진화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절하고 상냥한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 팬데믹은 단지 하나의 촉매로 작용했을 뿐 사실 이전부터 그랬다.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로 취향을 권하는 소셜 미디어의 그럴듯한 광고에 혹해서, 이것은 내가 스스로 고른 나의 취향이라 철석같이 믿고 물건을 사고는 후회한 경험을 훈장처럼 하나쯤 가지고 산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 통신 기기의 발전, 거기에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해져 빅 브라더는 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진화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절하고 상냥한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 디스토피아 속 세계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결말에 이른다. 시스템에 길들여지거나 시스템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거나. 애초에 디스토피아의
목적이 이야기에 빗대어 현실을 비판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더욱 처절하고 냉소적인 결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의 창조자들은 이야기 속 결말을 거울 삼아 우리 모두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길고도 지리멸렬했던 펜데믹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백신 접종률이 70퍼센트를 넘겼고 빠르면 다음 달부터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친구 빅 브라더의 가면을 어디까지 벗길지, ‘일상으로 복귀’라는 말이 가진 의미를 신중하게 고민할 때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1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0분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