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금요예찬 쓰는 큐레이터Q입니다. 이번 글은 혼자 군침을 삼키면서 썼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맛있는 걸 먹어야겠어요. 오늘도 저의 소소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리 향기 인도 출신 영화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영화 “런치 박스(2013)”는 아침마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일라(님랏 카우르 분)의 분주한 주방을 그린다. 도시락의 주메뉴는 커리. 일라가 요리를
하면 영화 내내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윗집에 사는 것으로 추정만 되는 그의 이모가 음식 냄새만 맡고 부족한 향신료가 무엇인지 척척 알아맞힌다. 이모는 필요한 재료를 바구니에 담아 창밖으로 줄을 내려 일라에게 전달하며 자신의 비법 레시피라면 남편이 타지마할을
지어 줄거라 호언장담하는데 거기에 일라는 타지마할은 무덤이라며 맞받아 친다. 하지만 나는 무덤일지언정
타지마할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커리 레시피와 그 레시피로 만든 커리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중학생 때 다니던 학원 건물 1층에 어느 날 인도 요리 전문점이
생겼다. 아직 커리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카레가
인도 전통 음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나에게 카레는 카레라이스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진짜 인도 카레, 그러니까 ‘커리’는 무척이나
놀랍고 신비로운 음식이었다. 메뉴판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주문처럼 잔뜩 쓰여 있었고
카레라이스와는 한 톨도 비슷해 보이지 않는 음식 사진이 눈을 현혹했으며 동시에 매우 비싼 가격이 마음을 호기심으로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들의 '커리 맛보기' 무용담을 듣는 나의 자세는 흡사 동방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듣는 13세기 유럽인 같았다 매혹적인 메뉴판은 사춘기 중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용감한 친구 몇몇은 용돈을 모아 그 집에서 커리를 정말로 맛보고 오기도 했다. 나는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영 어색해서 그들의 탐험에 동반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커리 맛보기’ 무용담을 듣는 나의 자세는 흡사 동방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듣는 13세기 유럽인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야 커리를 처음 먹었다. 여전히 비쌌고 여전히 알
수 없는 단어가 가득했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른 커리를 골라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빈달루, 팔락 파니르, 치킨 티카 마살라 같은 커리를 맛보았다. 인도 음식점에만 있는 줄 알았던 커리를 태국 음식점에서 ‘푸팟퐁커리’라는 메뉴로 만났을 때 또 한번 놀랐고, 어쩐지 그 메뉴를 문자 그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항상 ‘뿌빳뽕커리’로 말하는 스스로에 매번
웃는다. 나중에는 영국식 인도 커리라는 다소 수상해 보이는 커리도 만났는데 버터를 아끼지 않아 전체적으로
부드러워 입맛에 잘 맞았다. 지금 이 커리를 만들고 있는 자가 대학원생이라면 전공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엄숙히 권할 의무감이 샘솟는 그런 향이었다 이런 갖가지 커리 중에서 내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커리는 우습게도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이름 모를 커리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져 사위가 어둑어둑할 무렵 기숙사로 가는 길에 커리 냄새가 났다. 누군가 늦은 저녁을 해 먹는 모양이었다. 굉장했다. 그동안 어느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커리 향이었다. 지금 이 커리를 만들고 있는 자가 대학원생이라면 전공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엄숙히 권할 의무감이 샘솟는 그런 향이었다. 우연히,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며칠 동안 비슷한 시간대에 그
어귀를 지나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 황홀한 커리 향기의 근원지는 외국인 기숙사로 짐작되었다. 당장이라도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커리, 나도 한입 먹게 해 달라!” 외치고 싶다 가도 그럴 용기도 나지
않고 누군가의 평화로운 저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관두었다. 그렇게 한동안 커리 향기를 맡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가 만드는 미지의 커리를 상상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세계 최고의
미남미녀로 만드는 것처럼 미지의 커리도 상상 속에서 세상 최고의 커리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커리 향이 가득했던 어느 저녁의 평화로운 캠퍼스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